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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노 F1 역사 정리 (771GP, 엔진혁신, 챔피언유산)

by papajuju 2025. 12. 28.

르노

 

2025년 아부다비 그랑프리는 포뮬러 1 역사에서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프랑스 자동차 제조사 르노가 약 반세기에 걸친 F1 엔진 공급사로서의 여정을 공식적으로 마무리했기 때문이다. 771번의 그랑프리 출전과 169번의 우승, 23회의 월드 챔피언 타이틀을 남긴 르노의 발자취는 단순한 기록을 넘어 F1 기술사와 문화 전반에 깊은 영향을 남겼다. 본 글에서는 르노의 F1 여정을 시대별로 정리하며 그 유산의 의미를 되짚어본다.

터보 혁명의 시작, 르노의 도전

르노의 F1 도전은 단순한 신규 팀 참가가 아니라, 기술 패러다임을 바꾸겠다는 선언에 가까웠다. 1977년 영국 그랑프리에서 등장한 RS01은 기존 자연흡기 엔진이 지배하던 F1 세계에 전혀 다른 질문을 던졌다. “작은 배기량이라도 과급 기술로 경쟁할 수 있는가?”라는 도전이었다. 당시 대부분의 팀은 터보 엔진을 **신뢰성 부족, 열 관리 실패, 출력 지연(터보 래그)**이라는 이유로 현실성이 없다고 판단했다. 실제로 RS01은 잦은 엔진 트러블과 흰 연기를 내뿜으며 완주조차 어려웠고, 팬들 사이에서는 ‘옐로우 티팟(Yellow Teapot)’이라는 조롱 섞인 별명까지 얻었다. 하지만 르노는 단기 성적보다 기술 축적과 데이터 확보를 우선했다. 터보차저 제어, 연료 분사, 냉각 시스템 등은 시간이 필요한 영역이었고, 르노는 이를 장기 프로젝트로 접근했다. 이 선택은 이후 모든 F1 엔진 제조사가 터보로 전환하게 되는 역사적 출발점이 됐다.

첫 승과 경쟁력의 증명

1979년 프랑스 그랑프리는 르노 프로젝트가 ‘실험’에서 ‘경쟁력’으로 전환된 순간이었다. 장-피에르 자부이유는 RS10 머신으로 홈 레이스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터보 엔진이 레이스 거리 전체를 버틸 수 있고, 우승까지 가능하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이 승리는 단순한 한 경기 결과가 아니라, 기술 노선에 대한 정당성 확보라는 의미를 가졌다. 이후 경쟁 팀들은 태도를 바꾸기 시작했다. 페라리, BMW, 혼다 등 주요 제조사들이 터보 개발에 착수했고, 자연흡기 중심의 F1 엔진 철학은 빠르게 균열이 생겼다. 르노는 이 시점부터 단순한 도전자가 아닌 기술 리더로 인식되기 시작했으며, 터보 출력 제어와 연료 효율의 균형이라는 새로운 개발 경쟁을 주도했다. F1이 ‘마력 싸움’에서 ‘시스템 엔지니어링 경쟁’으로 이동한 결정적 계기였다.

프로스트와 세나, 엔진 공급사의 전성기

1980년대 초반 르노는 워크스 팀과 엔진 공급사라는 이중적 정체성을 확립했다. 알랭 프로스트와 함께한 시기는 르노 엔진이 단순히 강력할 뿐 아니라, 드라이버 챔피언십을 노릴 수 있는 수준에 도달했음을 보여줬다. 1983년 시즌, 프로스트는 타이틀 경쟁을 이끌었으나 기계적 신뢰성 부족으로 챔피언을 놓쳤다. 이는 터보 시대 초기의 공통된 과제이기도 했다. 하지만 진정한 전환점은 1985년, 아일톤 세나가 로터스-르노 머신으로 보여준 퍼포먼스였다. 세나의 압도적인 주행은 르노 터보 엔진이 최고의 드라이버 재능과 결합했을 때 어떤 잠재력을 발휘하는지를 전 세계에 각인시켰다. 이 시기부터 르노는 ‘챔피언십을 꿈꾸는 팀이라면 반드시 고려해야 할 엔진 공급사’로 자리 잡았다.

윌리엄스와 함께한 챔피언 시대

1989년 이후 르노는 엔진 공급사로서 절정의 전성기를 맞는다. 특히 윌리엄스 레이싱과의 파트너십은 F1 역사에서 가장 성공적인 기술 협업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1992년 윌리엄스-르노는 액티브 서스펜션, 공력 효율, 강력하면서도 부드러운 V10 엔진을 결합해 시즌을 사실상 지배했다. 니겔 맨셀의 챔피언십은 르노 엔진의 완성도를 상징하는 결과였다. 이 시기 르노 파워트레인은 출력, 연비, 내구성의 균형이라는 이상적인 엔진 철학을 구현했으며, 단순히 빠른 엔진이 아닌 ‘차 전체를 살리는 엔진’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1990년대 F1을 정의한 엔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알론소와 함께한 팀 르노의 부활

2000년대 초반 르노는 다시 한 번 워크스 팀 전략을 선택한다. 베네통 인수를 통해 팀 르노로 복귀한 이 결정은 단기 성과보다는 장기 브랜드 가치를 겨냥한 선택이었다. 그리고 이 전략의 중심에는 페르난도 알론소가 있었다. 알론소는 2005·2006년 연속 챔피언십을 통해, 슈마허-페라리 시대를 끝낸 인물로 기록됐다. 이 시기의 르노는 단순히 강한 엔진을 가진 팀이 아니라, 차체·엔진·전략·드라이버가 완벽히 맞물린 조직이었다. 특히 신뢰성 중심의 파워유닛 운영과 타이어 전략은 당시 경쟁사 대비 뚜렷한 차별점이었다. 이는 르노 역사상 가장 찬란한 순간으로 남아 있다.

 

르노의 포뮬러 1 여정은 단순한 승수나 기록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터보 혁명의 시작부터 챔피언십을 지배한 황금기, 그리고 변화의 시대 속에서 내린 현실적인 결단까지, 르노는 F1 기술과 문화 전반에 깊은 흔적을 남겼다. 비록 엔진 공급사로서의 활동은 종료되지만, 르노가 남긴 유산은 포뮬러 1 역사 속에서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