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1 팬들 사이에서 ‘드라이버의 서킷’으로 불리는 곳, 바로 벨기에 그랑프리의 무대, 스파-프랑코르샹(Spa-Francorchamps)입니다. F1 캘린더에 존재하는 수많은 서킷 중에서도 유난히 마니아들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는 이 트랙은, 독특한 고저차와 예측 불가능한 날씨, 그리고 고속 코너들이 결합되어 가장 ‘스릴 넘치는 레이스’를 만들어냅니다. 스파는 1925년부터 F1의 일부였으며, 세계 2차대전 전후를 거쳐 여러 형태로 진화해왔습니다. 현재의 7.004km 레이아웃은 1983년부터 유지되고 있으며, 빠른 속도와 위험한 코너들이 조화를 이루며 ‘진정한 챔피언’만이 우승할 수 있는 서킷으로 평가받습니다. 이 코스는 총 19개의 코너로 구성되며, 긴 스트레이트와 고속 코너의 연속이 특징입니다. 엔진 파워와 에어로 밸런스, 타이어 관리 능력까지 드라이버의 모든 능력을 시험하는 종합 평가장이며, 팬들에게는 매년 명장면을 선물하는 무대이기도 합니다.
명장면의 성지, 팬들이 기억하는 순간들
1. 1998년 멀티카 사고 - 카오스의 정점
거센 빗속, 스타트 직후 무려 13대가 충돌하며 대혼란을 야기했던 1998년 벨기에 GP는 지금도 F1 역사상 최악의 사고 중 하나로 남아 있습니다. 이 사고로 인해 레이스가 중단되고, 재스타트가 이루어졌으며, 이변 속에서 조던 팀의 데이먼 힐이 우승하며 팀에 첫 승리를 안겼습니다.
2. 2000년 하키넨 vs 슈마허 - 전설의 추월
가장 예술적인 추월로 회자되는 하키넨의 더블 패싱 장면은 지금도 하이라이트 영상에 반드시 등장합니다. 백마커인 리카르도 존타를 사이에 두고 슈마허를 오른쪽에서 추월한 장면은 완벽한 타이밍과 배짱이 만들어낸 역사적 순간으로 평가받습니다.
3. 2021년 ‘노레이스’ - 규정의 아이러니
비로 인해 단 2바퀴만 세이프티카 뒤에서 주행한 뒤 레이스가 종료되며, 역사상 가장 짧은 GP로 남은 2021년 벨기에 GP는 논란과 실망을 동시에 낳았습니다. 공식적으로는 레이스가 열린 것으로 간주되었고, 예선 순위대로 절반의 포인트가 배분되면서 논쟁이 일었습니다.
드라이버들이 인정한 가장 도전적인 서킷
스파는 드라이버들에게도 사랑받는 서킷입니다. 특히 전 세계에서 가장 상징적인 코너로 꼽히는 “오 루즈-라디옹” 구간은, 고속으로 진입해 언덕을 따라 올라가는 독특한 레이아웃으로 유명합니다. 이 구간은 드라이버에게는 엄청난 G-포스를 견뎌야 하는 체력적인 도전이자, 차의 셋업과 신뢰도, 그리고 한 치의 실수도 허용하지 않는 집중력을 요구하는 시험대입니다. 드라이버들은 이 구간을 풀 스로틀로 통과할 수 있는가를 통해, 자신과 차에 대한 신뢰를 측정하기도 합니다. 특히 예선에서는 단 0.1초라도 아끼기 위해 리스크를 감수해야 하기 때문에, 오 루즈에서의 실수는 곧 리타이어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날씨, 전략, 변수가 만든 드라마
벨기에는 유럽 내에서도 날씨 변화가 극심한 지역으로, 스파 서킷 위에 한쪽은 맑고, 다른 한쪽은 폭우가 내리는 날씨가 종종 연출됩니다. 이로 인해 타이어 전략, 피트 인 타이밍, 세이프티카 상황 등에서 수많은 변수가 발생하며 매년 레이스를 ‘예측 불허’의 상태로 만듭니다. 스파는 타이어 데그라데이션이 높진 않지만, 노면 온도가 낮은 경우 타이어 워밍업에 실패해 실수로 이어질 확률이 높습니다. 특히, 스파 특유의 고속에서 저속으로 급전환하는 세터스-브뤼셀-퐁쉬인 구간은 브레이크 밸런스와 다운포스를 어떻게 조절하느냐에 따라 승부가 갈리기도 합니다. 또한 스파는 고저차가 심하고 긴 스트레이트가 많아 연료 소비가 많은 편입니다. 따라서 팀들은 전략적으로 연료를 아끼거나, 리프트앤코스트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F1 팬이 캠핑하며 떠나는 순례의 여정
벨기에 GP는 단순한 스포츠 이벤트를 넘어, 전 세계 F1 팬들이 매년 ‘순례’하듯 찾는 상징적 행사입니다. 서킷 주위에는 수천 대의 캠핑카와 텐트가 즐비하게 늘어서며, 레이스 전날부터 팬들이 함께 모여 바비큐를 굽고, 깃발을 휘날리며 드라이버들의 이름을 연호합니다. 이곳의 분위기는 단순한 스포츠를 넘어선 축제입니다. 밤에는 숲속에서 팬들이 만든 불꽃과 음악이 어우러지고, 아침이면 짙은 안개 속에서 아드레날린 넘치는 하루가 시작됩니다. F1이 가진 고급 이미지와는 반대로, 스파는 가장 ‘인간적인’ F1을 느낄 수 있는 서킷이라 할 수 있습니다.
스파는 단지 레이싱의 무대만은 아닙니다. 이곳은 마니아 팬들에게 F1의 ‘영혼’이 담긴 곳입니다. 매년 수많은 팀들이 가장 정밀한 셋업을 들고 스파를 공략하며, 성능뿐 아니라 운과 전략, 기량이 완벽하게 맞물려야만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는 서킷입니다. 오늘날의 F1이 점점 기술 중심으로 변화하고 있지만, 스파만큼은 여전히 인간적인 드라마와 ‘위험의 예술’을 간직한 채 시대를 관통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