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알핀 F1 팀은 과거 ‘100레이스 플랜’이라는 장기 프로젝트를 내세우며 우승권 복귀를 선언했지만, 현실은 기대와 달랐다. 2025시즌 컨스트럭터 최하위라는 결과 이후, 새 매니징 디렉터 스티브 닐센은 기존 방식과 선을 긋고 보다 현실적이고 유연한 재건 전략을 강조하고 있다.
실패로 끝난 100레이스 플랜의 교훈
알핀은 2021년 르노 F1 프로젝트를 브랜드 알핀으로 전환하며, 명확한 시간표 중심의 성장 전략을 제시했다. 이른바 ‘100레이스 플랜’은 외부 투자자와 내부 구성원 모두에게 방향성을 제시하는 데는 효과적이었지만, 결과적으로는 F1이라는 환경의 본질을 과소평가한 계획이었다. F1은 단순히 자금이나 시간 투입으로 성과가 선형적으로 개선되는 산업이 아니며, 기술 규정의 변화와 인력 이동, 경쟁 팀의 대응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100레이스라는 고정된 프레임은 오히려 조직에 역효과를 낳았다는 평가도 가능하다. 목표 시점이 명확할수록 단기적 성과 압박이 커지고, 장기적인 기술 축적보다 즉각적인 결과를 내기 위한 의사결정이 반복될 위험이 있다. 실제로 알파인은 이 기간 동안 기술 리더십과 팀 운영 구조가 여러 차례 흔들렸고, 이는 개발 일관성 저하로 이어졌다. 결국 이 프로젝트의 실패는 “언제까지 무엇을 하겠다”는 선언형 목표가 F1에서는 얼마나 취약한지를 보여준다. 성공적인 팀들은 시간표보다 방향성과 구조를 우선시하며, 결과는 그 부산물로 받아들인다. 100레이스 플랜은 야심찼지만, F1의 현실 앞에서는 지나치게 단순한 모델이었다.
스티브 닐센이 말하는 새로운 재건 철학
2025년 아부다비 그랑프리 주말, 스티브 닐센의 발언은 알핀이 과거와 명확히 선을 긋겠다는 선언에 가까웠다. 그는 3년, 5년, 100레이스와 같은 숫자 중심 계획을 전면 부정하며, 성공의 기준을 ‘과정의 질’로 옮겼다. 이는 단기 목표 설정이 아닌, 조직 설계 자체를 다시 보겠다는 의미다. 닐센이 제시한 철학의 핵심은 인적 자원이다. 최고의 엔지니어와 운영 인력을 영입하는 것뿐 아니라, 그들을 가장 효과적인 위치에 배치하고 명확한 권한과 책임을 부여하는 구조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는 단순한 슬로건이 아니라, 메르세데스와 레드불 등 성공 팀들이 공통적으로 채택해 온 방식이다. 또한 그는 목표를 숫자로 제시하지 않는 대신, 매 주말 ‘올바른 선택을 했는가’를 기준으로 팀을 평가하려 한다. 이 접근은 결과 중심 평가보다 내부 의사결정의 질을 개선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닐센의 철학은 알핀이 다시 기술 조직으로서의 정체성을 회복하려는 시도로 해석할 수 있다.
한 번에 바뀌지 않는다는 현실 인식
닐센이 강조한 또 하나의 핵심은 속도보다 안정성이다. 그는 몇 달 만에 팀을 정상 궤도로 올려놓겠다는 환상을 명확히 부정했다. 이는 F1에서 가장 흔히 반복되는 실수가 ‘조급함’이라는 점을 정확히 인식한 발언이다. 급격한 변화는 종종 더 큰 혼란을 낳고, 조직 내부 신뢰를 약화시킨다. 알핀의 문제는 단일 영역에 국한되지 않는다. 섀시 개발, 파워 유닛 연계, 레이스 운영, 인력 구조 등 여러 층위가 얽혀 있다. 따라서 한 번의 결정이나 한 명의 영입으로 해결될 수 없으며, 각 문제를 정확히 분리해 단계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닐센이 말한 ‘한 걸음씩’이라는 표현은 바로 이 복합성을 전제로 한 것이다. 이러한 현실 인식은 팀 문화에도 영향을 미친다. 즉각적인 성과를 강요하지 않음으로써, 엔지니어들이 장기적인 해결책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든다. 이는 단기 성적은 더딜 수 있지만, 중장기적으로는 조직의 내구성을 높이는 선택이다.
2026 시즌을 향한 신중한 자신감
2026년은 F1 역사상 가장 큰 규정 변화 중 하나가 예정된 시즌이다. 파워 유닛과 섀시 규정이 동시에 바뀌는 이 시점에서, 닐센은 조심스럽지만 분명한 자신감을 드러냈다. 그는 2025년보다 나은 차를 만들 것이라고 말했지만, 구체적인 순위 목표는 제시하지 않았다. 이는 결과 예측보다 준비 과정에 집중하겠다는 의미다. 중요한 점은 “우리만 개선하는 것이 아니다”라는 그의 인식이다. F1에서 경쟁력은 절대적인 발전이 아니라 상대적 위치로 결정된다. 알핀이 1초를 단축해도, 다른 팀이 1.2초를 단축하면 순위는 오히려 내려갈 수 있다. 닐센의 발언은 이 냉혹한 현실을 정확히 반영한다. 따라서 2026 시즌에 대한 알파인의 전략은 ‘도약’보다는 ‘정상적인 출발’에 가깝다. 규정 초기에 기본적인 경쟁력을 확보하고, 큰 실수를 피하는 것이 우선 목표가 될 가능성이 크다. 이는 과거 과도한 기대 설정과는 분명히 다른 접근이다.
알핀이 다시 있어야 할 자리
닐센이 설정한 알핀의 현실적인 기준은 매우 명확하다. 매 레이스마다 포인트 경쟁에 참여하는 팀, 즉 안정적인 상위 미드필드다. 이는 우승이나 포디움보다 훨씬 기초적인 목표처럼 보일 수 있지만, 실제로는 팀 경쟁력의 핵심 지표다. 꾸준한 포인트 획득은 섀시, 전략, 운영 전반이 일정 수준 이상임을 의미한다. 2025시즌 알핀은 이 기준에 간헐적으로만 도달했다. 이는 팀의 퍼포먼스 창구가 너무 좁았다는 뜻이며, 특정 조건에서만 경쟁력이 발휘됐다는 증거다. 닐센의 목표는 이러한 ‘조건부 경쟁력’을 ‘상시 경쟁력’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알핀이 전통적으로 있어야 할 위치가 상위 미드필드라는 그의 발언은 과거 영광을 되찾겠다는 선언이 아니라, 현실적인 출발선 재설정이다. 이 단계를 통과하지 못하면, 그 어떤 장기 계획도 다시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 닐센의 접근은 느리지만, 적어도 현실과 동떨어지지 않은 재건의 첫걸음으로 평가할 수 있다.
스티브 닐센의 발언은 알핀 F1 팀이 과거의 실패를 교훈 삼아 접근 방식을 바꾸고 있음을 보여준다. 더 이상 숫자로 정해진 장기 계획에 의존하지 않고, 인재와 구조, 그리고 일관된 방향성에 집중하는 전략이다. 알파인의 재건은 화려한 선언보다 느리지만 단단한 변화에서 시작되고 있으며, 그 첫 단계는 ‘상위 미드필드 복귀’라는 현실적인 목표에 맞춰지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