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탈리아의 전통과 열정이 살아 있는 이몰라 서킷(Autodromo Enzo e Dino Ferrari)은 단순한 레이싱 트랙이 아니라, 모터스포츠의 역사와 기술 발전이 교차하는 상징적인 무대다. FORMULA 1 에밀리아 로마냐 그랑프리는 매 시즌 팀들의 기술력과 전략이 집약되는 대회로, ‘순수한 레이싱의 본질’을 보여주는 서킷으로 평가받는다. 이번 글에서는 이몰라 서킷의 역사, 설계 철학, 그리고 F1 팀들이 이곳을 어떻게 공략하는지 심층적으로 살펴본다.
이몰라 서킷의 역사와 부활, 설계 철학과 서킷 구조 분석
이몰라 서킷은 1953년에 처음 개장한 후, 수많은 역사적 순간을 만들어온 전설적인 트랙이다. 공식 명칭은 ‘Autodromo Enzo e Dino Ferrari’로, 페라리의 창립자 엔초 페라리와 그의 아들을 기리기 위해 붙여졌다. 이곳은 오랫동안 ‘산 마리노 그랑프리’로 잘 알려져 있었으며, 198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F1의 대표적인 유럽 라운드 중 하나였다. 그러나 1994년 이몰라는 비극의 무대로 기록되었다. 아일톤 세나와 롤란드 라첸버거의 사고로 인해 F1은 서킷 안전 규정을 전면적으로 재정비하게 되었고, 그 이후 이몰라는 한동안 캘린더에서 제외되었다. 하지만 2020년 코로나 팬데믹 이후 대체 일정으로 복귀한 이몰라는 놀라운 평가를 받으며 다시 정규 시즌에 편입되었다. 팬들은 “이몰라의 귀환은 클래식 F1의 부활”이라며 환영했고, 드라이버들 역시 “이 서킷은 운전자의 손끝과 감각이 중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이몰라의 부활은 단순한 추억이 아니라, 현대 기술과 전통이 조화를 이루는 진정한 레이싱의 재탄생이었다. 그만큼 이곳은 ‘드라이버가 만든 승부’가 펼쳐지는 몇 안 되는 트랙으로 꼽힌다. 이몰라의 가장 큰 특징은 반시계 방향 주행이다. 대부분의 F1 서킷이 시계 방향인 것과 달리, 이몰라는 드라이버의 왼쪽 목 근육과 팔에 큰 부담을 준다. 총 길이 약 4.9km, 19개의 코너로 구성되어 있으며 고저차가 심해 브레이킹과 가속의 리듬을 유지하기가 어렵다. 대표적인 구간은 Tamburello 코너다. 과거 고속 코너였던 이 구간은 세나의 사고 이후 완만한 시케인 형태로 변경되었다. 이어지는 Villeneuve, Tosa, Piratella, Acque Minerali, Rivazza까지 이어지는 연속 코너는 차량의 다운포스, 브레이크 밸런스, 그리고 드라이버의 집중력이 동시에 시험받는 구간이다. 이몰라의 설계 철학은 단순하다. “속도보다 리듬이 중요하다.” 직선 구간은 짧고, 코너는 연속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이 때문에 차량의 순수 속도보다는 코너링 밸런스, 즉 ‘기계적 그립(mechanical grip)’이 핵심이다. 팀 엔지니어들은 이곳에서 에어로 패키지보다는 서스펜션 세팅에 집중한다. 너무 많은 다운포스를 걸면 직선 구간에서 손해를 보고, 너무 적게 세팅하면 브레이킹 안정성이 무너진다. F1의 각 팀은 이몰라에서 ‘드라이버 감각에 의존하는 셋업’을 선택한다. 최신 시뮬레이션 기술이 발전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몰라만큼은 여전히 드라이버의 경험과 감이 승부를 가르는 트랙으로 통한다. 그래서 베테랑과 루키의 격차가 뚜렷하게 나타나는 곳이기도 하다.
이몰라 그랑프리의 전략과 기술적 관전 포인트와 공략법
이몰라의 DRS 구간은 단 한 곳, 피트 스트레이트에 위치해 있다. 따라서 다른 서킷처럼 DRS로 손쉽게 추월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진입 전 코너에서의 라인 선택, 타이어 온도 유지, 브레이킹 타이밍이 추월의 핵심이 된다. 타이어 전략은 항상 변수로 작용한다. 이몰라의 노면은 오래된 아스팔트 구조로 거칠고, 트랙 온도가 낮아지면 그립이 급격히 떨어진다. 따라서 미디엄-하드 조합의 원스톱 전략이 가장 흔하지만, 세이프티카 상황이 발생하면 팀마다 상이한 선택을 하게 된다. 특히 최근 해에는 피렐리의 타이어 구조 변화로 예년보다 마모 속도가 달라지면서 팀들의 전략 폭이 달라졌다. 예년과 달리 마모가 줄어든 경우는 피트 전략의 유연성을 높였고, 반대로 특정 구간에서 타이어을 관리하지 못하면 급격한 랩타임 저하를 경험하게 된다. 피트 타이밍 또한 승부를 가르는 요인이다. 실제로 과거 시즌에서는 언더컷(undercut)으로 선두를 빼앗기는 사례가 나왔다. 이처럼 피트 진입과 출구에서의 초 단위 판단이 전체 순위를 뒤집을 수 있다. 또한 코너가 연속된 서킷 구조상, 선두 차량이 트래픽에 갇히면 타이어 손상이 급격히 늘어나므로 팀의 실시간 전략 판단이 필수적이다. 이몰라에서는 엔진 출력보다는 드라이버의 라인 정밀도와 코너링 속도 유지 능력이 승패를 결정한다. 그래서 많은 전문가들은 “이몰라에서 빠르다면, 진짜 실력자”라고 평가한다. 드라이버 입장에서는 브레이킹 포인트의 일관성 유지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연속 코너 구간에서는 한 코너의 진입이 다음 코너의 세팅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라인 선택의 실수는 곧바로 랩타임 손실로 이어진다. Rivazza처럼 노면 변화가 심한 코너는 타이어의 한계를 시험하는 구간으로, 과감한 스로틀 조작과 세밀한 스티어링 입력이 요구된다. 또한 반시계 방향 특성 때문에 왼쪽 타이어(특히 앞왼쪽)에 가해지는 하중이 크다. 장거리 주행에서 앞왼쪽 타이어의 열화가 빠르게 진행되므로, 드라이버와 엔지니어는 이 점을 고려해 브레이크 쿨링, 서스펜션 세팅, 그리고 타이어 워밍 전략을 조정한다.
전통과 현대가 공존하는 레이싱의 성지
이몰라의 매력은 단순히 코스 설계나 경기력에 있지 않다. 트랙 주변의 분위기, 팬들의 열정, 그리고 이탈리아 특유의 문화적 에너지가 어우러져 있다. 그랑프리 주간 동안 에밀리아 로마냐 지역 전체가 축제 분위기로 물들고, 페라리 팬들의 응원가 ‘Forza Ferrari!’가 서킷을 뒤덮는다. 2025 시즌 들어 맥라렌과 레드불, 그리고 페라리가 치열한 경쟁을 펼치는 가운데, 이몰라는 각 팀에게 ‘진정한 밸런스 테스트의 무대’로 자리 잡았다. 단순한 스피드 경쟁을 넘어, 레이싱 철학과 팀워크, 그리고 인간의 집중력과 감각이 어우러진 전장의 중심이 된 것이다. 이몰라는 여전히 세대를 초월한 상징적인 장소다. 과거 세나와 슈마허의 시절을 기억하는 팬들에게는 추억의 무대이자, 젊은 세대에게는 현대 기술이 어떻게 레이싱의 본질과 만나는지를 보여주는 생생한 현장이다.
이몰라 서킷은 그저 하나의 트랙이 아니다. 속도와 기술, 그리고 인간의 감각이 만들어내는 레이싱의 예술이다. “가장 정직한 서킷”이라는 별명처럼, 이곳에서는 작은 실수 하나가 곧 결과로 이어진다. 그래서 이몰라는 여전히 모든 드라이버가 두려워하면서도 사랑하는 장소로 남아 있다. 이몰라를 이해하는 것은 곧, F1의 본질을 이해하는 일이다.
